41#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I. 아카이빙

1.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죽음은, 적어도 영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는, 단골로 등장하는 비유다. 발성영화의 탄생은 한편에서는 혁명이자 진보였지만 다른 한편에는 예술로서의 영화의 종말을 의미했다. 1 물적 존재로서 영화 film 는 셀룰로이드 필름의 퇴장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고,2 시네필의 영화 cinema 는 산업industry이 되면서 소멸해 갔다. 한편 비디오, 케이블, 또는

DVD와 같은 매체 앞에서 아니면 뉴미디어 환경에 걸 맞는 소비 형태에 근거하여, 우리는 필름 혹은 영화(시네마)가 또한 죽었다고 선언해 왔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판단들이 가리키는 공통적인 현상 하나는, 시각이미지,

1 제프리 노웰 스미스 엮음, 이순호 외 옮김,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서울: 열린책들, 2005), p. 270. 변화하는 이미지와 의미의 연결 구조를 탐색 중이다.2 조혜영, 『영화의 죽음:포스트필름 영화의 존재양식에 대한 연구』, 학위논문(서울: 중앙대학교, 2013)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남수영은 서울대학교, 워싱턴주립대(BA), 시카고대학교(MA), 뉴욕대학교(Ph.D)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에 재직 중이다. 영화 이론과 시각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하여 에세이 필름, 다큐멘터리 등에 대한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썼다. 또한 정신분석과 아감벤, 랑시에르 등 현대비평이론 내의 영화 담론을 연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뉴미디어 시대 변화하는 이미지와 의미의 연결 구조를 탐색 중이다.

4342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특히 기계적으로 매개된 사진 또는 영상 이미지가 지녔던 위상의 추락이다. 의미 전달의 수단으로서, 현실에 대한 지표로서, 예술적 표현의 양식으로서, 완성도 있는 서사를 구성하는 재료로서, 이미지는 계속해서 신뢰를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물론 반론은 가능하다. 오늘날 ‘이미지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영화 이미지의 지표성 indexicality 에 대한 논의 역시 이미지의 표현을 더욱 자유롭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영화나 영상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에서 ‘의미’는 이미지가 현실과 맺는 특수한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거나, 의미나 서사적 목적만을 중심으로 이미지 예술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도 이미지의 죽음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는 사진이나 영화같이 기계적으로 매개된 이미지를 현실에 대한 ‘증거’로 대할 때에만 어떤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카이브 이미지는 어떠한가? 아카이브는 바로 그 이미지의 ‘증거’로서의

존재성이 그 성립의 핵심에 있다.3 또한 그러한 기록 이미지들이 대부분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미지를 매개로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역사라는 시간의 축 위에서, 그리고 히스토리 Historie/story 라는 텍스트에 대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미지 기록에의 열망, 즉 아카이브 이미지로의 회귀가, 이미 죽어버린 과거에 대한 욕망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지의 디지털화는 지표성의 상실과 맞물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아카이빙의 보편화를 이끌어 내었다. 또한 그런 이미지들을 즉각적으로 검색, 소환할 수 있는 뉴미디어 기술이 더해져, 이미지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4 한 마디로 뉴미디어 시대에 아카이브 이미지는 새로운

3 죽음과 시간에 대한 저항으로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을 주장했던 앙드레 바쟁(André Bazin)을 떠올려본다. 앙드레 바쟁, 박상규 옮김,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 , 『영화란 무엇인가』(서울: 사문난적, 2013) 참조.4 어느 정도의 손질은 기본이고, 진위를 가릴 수 없는 합성 사진들이 쏟아짐으로써 이미지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 육안으로 포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는 고급 기술과

매개 안에서 끊임없이 소생蘇生한다. 그리고 파운드 푸티지 작업들은 그들을 부활시키는 대표적 영역이다. 우리는 이러한 작업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아카이브 이미지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표성을 잃은 이미지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러한 이미지가 어떤 기억과 연관된다면 그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이와 함께 아카이브 이미지가 역사 인식에 기여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한편 이 작업은 포스트-시네마 post-cinema 시대,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들이 중요한 예술 담론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분명히 드러내 줄 것이다.

2. 과잉 excess 이미지이미지 아카이빙의 역사는 20세기 말 역사기술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역사는 정지, 고정된 현실에 대한 진리가 아니라 역사에 따라 진리나 가치가 생성된다는 19세기의 역사주의 Historicism는 1960년대 즈음 소위 신역사주의 New Historicism로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 신역사주의는 단일하고 일반적인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유하고, 개별적인, 그리고 변칙적인 것들에 기반한 다수의 역사”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는데, 신역사주의자들은 이전에 역사라고 여겨지던 것들과는 다른 것들을 찾기 위해 아카이브로 달려가곤 했던 것이다.5 하나로 통합되는 서사에 걸맞는 기록이 아닌 이례적이고 흩어진 조각조각들은 그렇게 ‘실제’의 모습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이 항상 컨트롤을 벗어나듯, 실제의 기록 역시 말

그대로 흩어진 것들을 가리킨다. 문서나 사진들로부터 영상, 필름, 녹음된 소리까지 다양한 시청각 자료들이 등장하면서 기록물의 혼재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시청각 자료들은 그 기록 대상을 지칭하는 문서 자료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달리 말해, 그 출처에 대한

그들이 즉각적으로 게시, 유포되는 연결망이 더욱 촘촘해지면서 이미지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5 Jaimie Baron, The Archive Effect: Found Footage and the Audiovisual Experience of History (New York: Routledge, 2014),pp. 3–4.

4544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문서화된 자료가 공존하지 않는 경우 시청각 기록은 어딘가 소속되지 못할 확률이 커진다. 이래저래 이미지 기록은 언제든지 그 본래의 지표성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6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사인 이미지 아카이브의 효용에 대한 회의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가? 이미지 기록이란 문서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며, 일종의 과잉 excess 이 아닌가 말이다. 바로 그 잉여적인 지점에서 아카이브는 결정된다. 보존하되, 많이

보존하는 것. 그 ‘많이’는 기본을 넘어 핵심이 된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그들 모두가 이미지의 집정관 archon, collector 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집정관은 최대한 빠짐없이 기록하려 할 것이고, 그 최대한, 많이, 즉 잉여가 아카이브를 규정한다. 또한 그/녀는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에 따라 걸러내지 않는 수집을 꿈꾸었을 것이다(카메라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많이’와 ‘있는 그대로’라는 두 개의 내재된 전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수집행위가 그 대상을 완전히 콘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정관의 아카이브는 기록하고 수집하는 한 완성되지 않으며 언제나 현재의 해석과 의미를 넘어서야 한다. 아카이브는 미래의 잉여를 통해 구축된다.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 1930–2004 가 『아카이브 열병 Archive Fever』(1995)

에서 지적하듯, 수집의 전제는 수집이 없었어도 존재했을 그 어떤 것들의 보고寶庫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수집가는 존재했던 것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그는 주장한다. 아카이브는 “기록 가능한 과거의 것들을 쌓아 놓거나 보존하는 그런 공간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카이브가 없었다 하더라도 어쨌든 존재했었을테고, 실제로 그랬고 또 그렇게 존재하리라 믿어지는 과거 말이다”. 7 그렇다면 아카이브의 구조는 과거(존재하는 사물, 역사)로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수집 행위)와 미래(아카이브의 형성)에 관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데리다는 또 “기록 가능한 콘텐츠 역시 그 생성의 순간과 동시에 그것의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 아카이브를 만드는 기술적 구조에 의해

6 위의 책, p. 3.7 Jacques Derrida,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translated by Eric Prenowitz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p. 17.

결정된다”고 말한다. “아카이빙이 사건을 기록할 뿐 아니라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8 이는 아카이브가 기록해야 할 가치가 있는 콘텐츠로부터 결정될 것이라는 일반적 견해와 상반된다. 데리다의 주장을 이미지 기록에 대입하여 살펴본다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록을 하지 않더라도 존재했을’이라는 부정적 상황의 가정은, ‘카메라가 없었더라도 벌어졌을’ 사건을 우연히 포착했음을 전제로 하는 수많은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베리테 Cinema

Vérité 이전 다큐멘터리들이 그렇게 기록으로서의 객관성에 근거하여 현실과 다큐멘터리를 관계짓곤 했던 것이다.9 데리다의 주장처럼 결국 이러한 기록물들은 기록하는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렇다고 기록들이 행위자(집정관 또는 수집가)에 의해 지배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을 담은 사람의 의도는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말 그대로 기계적으로 보존된 경우에 기록의 가치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기록물은 그 지시적 대상의 존재에 대해 의존하게 되어, 이미지가 기여하는 맥락은 사물 그 자체, 대상의 자연 그대로의 현실에 제한된다. 또한 개별 기록이 아카이브로 결정되는 것에는 시간적으로도 지시적으로도 불확실성이 개입한다. 마치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게 매일 돌아가고 있는 CCTV처럼, 그렇게 ‘주인 없이’ 주장되는 claimed 이미지, 그들이 바로 기록으로서의 아카이브 이미지의 원형이다. 오늘날 이런 아카이브 이미지가

소구된다면, 아마도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일 것이다. 대부분의 수집물들이 그러하듯, 그 가치가 인식되는 순간은 아주 나중에 오거나 아예 오지 않을 수 있다. 일종의 과잉인 기록 이미지들이 제대로 확인되고 탐구되지

8 위의 책, p. 17. “The archive… is not only the place for stocking and for conserving an archivable content of the past which would exist in any case, such as, without the archive, one still believes it was or will have been. No, the technical structure of the archiving archive also determines the structure of the archivable content even in its very coming into existence and in its relationship to the future. The archivization produces as much as it records the event.”9 이런 다큐멘터리에서 등장인물은 카메라를 의식해서는 안 되었다. 1950년대 후반 등장했던 ‘시네마 베리테’는 기존 다큐멘터리가 전제하는 이러한 작위적 상황을 거부하고,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직접 만들어 내는 현실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4746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않았다거나, 그들을 살피던 자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오늘날 매우 의미가 있는 어떤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채 숨어 있을 것이다. 아카이브로부터의 작은 발견이 과거를, 역사를 다시 쓰게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음은 원래 어떤 목적으로 수집되었는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 혹은 사건이 무엇인지 상관없는 재발견의 경우다. ‘잉여’적으로 존재하며 집정관의 컨트롤을 벗어난 이미지는 그 외연에 따라 다양한 맥락에 삽입될 수 있다. 물론 그 이미지가 전혀 새로울 필요도 없다. 누가 봐도 무엇의 기록인지 분명한 경우에도, 완전히 다른 흐름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 경험을 연상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 이미지는 지시 대상이 아니라 보는 자의 기억에 귀속된다. 처음의 경우가 역사가들의 접근법이라면, 두 번째 경우는 작가 auteur 이자 연구자 researcher 의 활용법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후자는 그 스스로 수집가 collector 가 된다. 오늘날 이미지의 소비 형태에 가장 가까운 것이 이 두 번째 수집인데, 일반적인 특징은 수집과 거의 동시적으로 전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II. 영화, 기억을 위한 몽타주

1. 신화와 영화사진이나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비유가 사용되었지만,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미이라다. 바쟁 Andre Bazin, 1918–1958 은 시체 보존 관습, 즉 미이라를 만드는 관습이 그림, 조각이나 사진, 영화와 같은 리얼리즘 예술 발생의 기본 요인이라 주장하였다.10 그렇지 않았다면 시간 속에 사그라져 버릴 시체에, 밀랍을 붓고 방부 처리를 하고 조금의 휘발도 없도록 붕대를 감아 놓는다.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그 ‘밀랍 덩어리’

10 앙드레 바쟁, 박상규 옮김,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 , 『영화란 무엇인가』(서울: 사문난적, 2013), 29–30쪽. 특히 사진이 순간을 박제한다면,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통째로 보존한다는 뜻으로 시간 속에 ‘포장된 채 보존하는’(미이라를 만드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결국 죽음에 대한 불안에 맞서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욕구와 통하는 것이다. 37쪽.

주인공의 ‘이름’과 그가 누렸을 영화와 권력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그에 대한 후세의 기억 말이다. 그렇다. 시체를 미이라로 만드는 풍습이 시간의 흐름에 대항하는 불멸에 대한 욕망이라면, 그것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영원히 기억되고자 하는 욕망에 관련된 것일 것이다.11

플라톤 Plato, BC.427–347에게 영혼이란 생명의 핵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영혼의 본질이 ‘기억’에 있다고 주장한다. 영혼은 마치 무엇인가를 새겨 넣을 수 있는 밀랍과도 같다. ‘시간 속의 미이라’로서 영화 안에 담긴 소망이 도달하는 지점도 바로 거기일 것이다.

무언가를 새겨 넣을 수 있는 밀랍이 우리의 영혼 속에 들어 있다고 상상해 보게. 어떤 이들은 더 많이 혹은 덜 가지고 있고, 어떤 이들의 것은 좀 더 순수하거나 불순하고, 또 어떤 것들은 더 단단하거나 더 유연하거나 아니면 그 중간 정도라고 상상해 보게. 그것을 우리는 뮤즈들의 어머니, 므네모시네 Mnemosyne 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 중에서 기억 속에 담아 두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가 감각과 이성에 내맡기는 이 밀랍 속에 새겨진다고 볼 수 있네. 그렇게 해서 새겨진 것들에 대해 우리는, 이미지 to eidolon 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기억과 방식을 보존할 수 있네. 하지만 지워지거나 새겨지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잊게 마련이고 그것들에 대해서는 방식조차 간직할 수 없는 걸세.12

우리는 밀랍에 새겨진 것들을 기억할 수 있다고 믿지만,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분명히 보존되는 것은 기억할 수 있는 틀이다. 밀랍 덩어리에 남는 것은 그저 밀랍, 즉, ‘기억과 방식’ 중 ‘방식’인 것이다. 마치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11 심한 경우,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즉 불멸하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기도 하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 김병욱 옮김, 『불멸』(서울: 민음사, 2011)12 저자 강조. 플라톤, 『테아에테투스』 191d–e 조르조 아감벤, 윤병언 옮김, 『행간』(서울: 자음과 모음, 2015), 155쪽 재인용.

4948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우선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스꽝스러운 만화들에서 보듯이 우리가 피라미드에서 만나는 것은 속은 텅 빈 왁스로 고정된 붕대일 뿐이다. 아름다운 투탕카멘의 마스크 아래, 역시 정유와 밀랍으로 채워진 육신의 껍데기는, 우리는 기껏 이러한 물신을 보존할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결코 완전히 복원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13 미이라를 통해 보존(기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유한성이다. 어떤 증거로서의 이미지가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깝다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이미지가 기억을 기록하는 매체로 적극 활용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로부터 그러한 매체의 특성을 전경에 두는 실험들은 유효기간도 없는 듯 오늘날 영상 작업의 주요한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영화나 영상 이미지를 통해 이뤄지는 기억의 복원 작업들은 20세기 기억 담론의 맥락에 맞닿아 있다. 오늘날의 소위 기억 담론 형성의 역사는 지난 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심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는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떤 시간이다. 하지만 제대로

‘기억할 수 없음’으로 규정되는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하는 이 담론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급속도로 늙고 있는데, 그렇게 ‘역사’가 되는 것은

20세기라는 동시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트라우마의 탐구는 의지에 따라 연결되는 ‘회상 remembrance ’이 아닌 주로

‘비의지적 기억 involuntary memory ’과 그것이 촉발하는 인식에 주목하고,14 이러한 기억을 담아내는 영상이미지는 단순히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 그 이상의 작업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 이미지의 부활 또는…

2015년 여름, 코리아나미술관은 «필름

13 한편 물질의 완벽한 보존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삶의 모습일 수 없다.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똑같고 그것이 미래에도 그대로 일거라 상상할 수 있는 그 무엇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 밀랍 인형과도 같은 무생물, 즉 죽음의 모습일 것이다.14 Walter Benjamin, Illuminations: Essays and Reflections, translated by Harry Zohn(New York: Schocken, 1968) p. 158.

몽타주»라는 기획전을 개최하였는데, 이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전시였다.15 이 기획전에는 작년에 타계한 파로키 Harun Farocki, 1944–2014 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 Workers Leaving the Factory ›(1995)과 그의 마지막 영상 프로젝트 ‹노동을 비추는 싱글쇼트 Labour in a Single Shot ›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파운드 푸티지를 활용하여 에세이 필름을 만든다는 점에서 파로키와 같이 전시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노재운, 박민하, 김아영, 그리고 엘리자베스 프라이스 Elisabeth Price, 1966–, 베아트리체 깁슨 Beatrice Gibson, 1978–, 젠 리우 Jen Liu, 1952– 등 해외 작가의 작품들을 함께 선보였다. 이들 작품은 모두 전시 기획에 맞게 “작가가 직접 촬영한 영상과 함께 영화, 다큐멘터리, 웹, 텔레비전 등에서 발췌한 영상을 ‘아카이빙’하고 변증법적으로 ‘몽타주’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리얼리티와 의미를 만들어 내는” 최근 미디어 영상 작업의 한 흐름을 대표한다.16 이렇게 이 전시의 키워드는 두 개, 즉 ‘몽타주’와

‘아카이브’다. 말 그대로 “장면과 장면의 결합과 편집”을 통해 기존 영상들을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펼쳐놓음으로써17 죽은 이미지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영화는 프레임의 연결을 통해 움직임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각각의

쇼트 이미지들을 조합, 배열하여 대상을 재현하거나 의미를 구현한다. 일반적으로 몽타주 하면 에이젠스타인 Sergei

Eisenstein, 1898–1948, 푸도프킨 Vsevolod Pudovkin,

1893–1953 등이 발전시킨 쿨레쇼프 Lev

Vladimirovich Kuleshov, 1899–1970 실험을 떠올린다. 그의 이름을 따 ‘쿨레쇼프 효과’로 명명하기도 하는데 쇼트의 의미가 그 각각의 이미지 안에서 결정된다기보다 이어진 쇼트와의 관계, 즉 문맥에 따라 나타나는 효과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18 달리 말해, 기본적으로 몽타주는 쇼트이미지를 시간의 축 위에서 조립, 재배열함으로써 이미지가

15 «필름 몽타주(Film Montage)» 2015.5.7–7.11 코리아나 미술관.16 코리아나 미술관 홈페이지, 스페이스씨 지난 전시 소개 ‹Film Montage› ‹http://www.spacec.co.kr/mboard/mboard.asp?board_id=gallery02&group_name=spacec&idx_num=71&page=1&category=writer subject content&search=&b_cat=0&order_c=b_reg_date&order_da=desc 마지막 방문 2015.11.05›17 위의 글 같은 쪽 참조.18 Lev Kuleshov, Kuleshov on Film, 1922–1968. Selected, translated and edited withan introduction by Ronald Levaco

5150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지표적으로 indexically 가리키는 대상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필름 몽타주»의 기획이 강조하듯 최근 현대미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즉 “수십 수백 개의 파편화된 이미지가 끊임없이 연결되는 가운데 원작의 문맥과 권위는 사라지지만 발췌된 영상 이미지들은 연쇄적으로 이어져, 이미 존재하고 고정된 것들의 파편들로부터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발생시”키는 19 한 축에

‘아카이브’와 함께 ‘몽타주’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몽타주는 원래 표현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진다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일방적 해석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에트 몽타주에 근거하여 우리는 원문맥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효과에 주목하지만, 소비에트 몽타주는 원래 미국의 그리피스 D.W. Griffith, 1875–1948 편집 기법이 수용된 결과다. 그리피스가 영화 문법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것은 바로 이 몽타주 원칙을 최초로 기획 실현했기 때문이다. 그 원칙의 핵심은 한마디로 ‘잘라서 붙이기 cut and paste ’다. 한 컷에 한 장면씩 담아 왔던 초기 영화의 관습을 넘어서, 쇼트들로 분리하고 다시 조합하여 재배치하는 편집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자른다는 것은 쇼트 하나하나가 분리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전체’로부터 ‘부분’을 잘라 낸다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을 풀 쇼트로 잡지 않고 미디엄으로 잡는다거나, 특정 소품이나 손과 같은 미장센의 한 부분 또는 신체의 일부분만 클로즈-업으로 잘라 삽입하는 것이다. 이때 몽타주에 사용된 쇼트 이미지는 부분으로 전체를 의미하거나 구체적 사물을 통해 관념을 나타내는 대유법적 수사법의 한 요소가 된다. 작가가 단어와 문장을 배치하듯, 감독은 이미지 쇼트들을 배열하여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몽타주는 영화가 그렇게 의미를 만들어 내는 과정, 즉 영화의 편집 그 자체다. 이 과정을 반대로 생각하면, 몽타주는 파편화된 경험을 보이지 않는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4) 참고. 한편 이와 같은 시각이 반영되는 데 있어서는 소비에트 감독들 사이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푸도프킨은 쇼트 이미지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느냐에 초점을 두는 반면, 에이젠스타인은 쇼트들 사이의 연속성이 완전히 상실된다 해도 강력한 긴장과 충돌을 통해 인식을 구현하는 데 치중하기 때문이다.19 위의 글

전체에 연결시킨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부분으로서 전체를 표현하는 관계 짓기는 몽타주 기법의 핵심에 존재하며, 이것은 편집을 통해 영화의 서사가 형성되는 이치와 맞물린다. 달리 말하면, 몽타주는 그 무엇보다도 감독이 지향하는 바로서 의미, 즉 서사적 의미의 생산에 직결된다. 여기서 서사는 꾸며낸 이야기만 지칭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의미 생산 체계로서의 서사는 논픽션 영화에도 존재하며, 이는 편집, 즉 몽타주를 통한 구성 construction 에 의거한다. 그렇다면 아카이브 이미지로 재구성된 몽타주와 일반 극영화는 그 양식의 측면에서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다. 또한 그러한 몽타주가 아카이브 이미지를 가지고 역사가 부여한 권위와 차별화되는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라는 또 다른 권위를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우리는 바쟁이 몽타주에 대해 가졌던 유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관객은 감독이 보기를 원하는 것만 보아야 하며, 잘 짜인 이미지들의 조합 앞에서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를 수용하는 역할로만 설정된다.20 그렇다면 새로운 맥락에서 ‘되살아나는’ 아카이브 이미지는 진정

부활한 것일까? 흩어진 이미지들, 주목받지 못한 이미지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오늘날의 몽타주는, 오히려 그 자체로 현실의 일부인 이미지들을 어떤 질서에 의해 걸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이지 않게 연속성의 환상을 조작하는 몽타주가 ‘역사’를 재구성한다면, 변증법적인 몽타주가 그에 대항하는 기억들을 호출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주목받는 영상작업들은 후자의 방식으로 아카이브 이미지를 활용한다 해도, 그 이미지들이 얼마나 아카이브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역사 속에서

‘존재’로서 의미를 지니던 아카이브 이미지는 현재의 구성 안에서 ‘의미화’되며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자체가 아카이브의 모순적 특징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은 현실의 부분일 뿐이지만, 동시에 초과된 것이다. 아카이브는

20 바쟁은 몽타주에 대하여 자연스러운 시각을 대변하는 롱테이크와 딥포커스를 지지하고 미장센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그는 이러한 비편집적 표현기법들을 영화가 지니고 있는 사실주의적 특성을 가장 잘 살리는 것으로 여겼다. 앙드레 바쟁, 박상규 옮김, 영화 언어의 진화 , 『영화란 무엇인가』(서울: 사문난적, 2013), 107–111쪽.

5352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의미화에 필요한 양을 넘어 존재하며 그 안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는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다른 곳, 즉 원래의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에 사용되기 용이하고, 쉽게 그렇게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주장되면서 그 의미는 고정, 축소된다. 그렇게 이미지들은 되살아나면서 또한 죽는다.

III. 두 개의 미완성 프로젝트: 연결과 열림

1. 므네모시네 아틀라스 프로젝트 Bilderatlas Mnemosyne

20세기 초 유복한 유태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아비 바르부르크 Aby

Warburg, 1866–1929 는 그의 사유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그의 유난스런 수집욕은 장남으로서 집안의 통솔권을 동생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동생에게 자신이 원하는 책을 전부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요구”했다는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21 바르부르크는 구속이 싫어 평생 정식 직업을 가지지 않았지만 직접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거기서 독립적으로 르네상스 미술을 연구했고, 엄청난 분량의 장서와 희귀 도서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집안 재력의 도움을 받았지만, 스스로는 유대인 졸부의 모습을 거부하고 독일인, 더 나아가 유럽인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길 바랬다고 한다. 바르부르크의 이러한 이중적 욕망은 그를 평생 괴롭힌 정신 분열증의 원인으로 꼽힌다.22 그는 1927년 고대 조형예술이나 문학작품의 이미지들을 모아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과 그와 동시에 작동하는 사유의 힘을 제시하려 이미지 아틀라스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는데, 우리는 이 기획에 ‘므네모시네’라 이름붙인 이유를 상상할 수 있다. 음악의 여신, 뮤즈는, 악보가 없던 시기 기억에만 의존하여 연주할 때

도움을 주는 여신들인데, 이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므네모시네 Mnemosyne 가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들로 알려져 있다. 신화 속

21 다나카 준, 김정복 옮김,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서울: 휴먼아트, 2013), 23–24쪽.22 위의 책, 24–26쪽.

므네모시네는 기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바르부르크는 시각문화 자료들을 “고대의 잔존, 파토스정형 Pathosformel, 그리고 사유공간”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므네모시네 이미지 아틀라스’를 시도한다.23 그것은 이성과 언어의 기록이 아닌 아카이브가 담고 있는 기억의 힘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는 정규 연구기관을 거부한 것처럼 박사논문 이후 논문은 거의 쓰지 않았으며, 연구 내용을 발표할 때도 이미지 슬라이드를 활용했는데, 서적 신문 잡지 광고를 가리지 않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 검은 패널에 스크랩한 므네모시네 이미지 아틀라스는 그러한 성과가 집약된 거대한 도상의 ‘성좌 constellation ’를 지향했던 것이다. 다나카 준 Tanaka Jun, 1890–1966 은 바르부르크의 생과 작업을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가 평생 줄타기했던 이성과 광기 사이에서 도상이미지에 대한 공포를 읽어 낸다. 바르부르크의 모든 작업들은 한마디로 양면성을 드러내는데, 서지학자이면서 점성술도상, 기독교와 이교도, 논리와 마술 등, 그 안에는 항상 의미와 해독을 추구하는 상징과 그 연결 관계를 넘어서는 물신숭배 fetishism 사이에 위태로운 줄타기가 있었던 것이다. 바르부르크의 패널들, 그리고 그들이 나오기까지 그가 탐구했던 계몽주의는 유태인 졸부의 아들이 아닌 탈국가적 이상을 지닌 이성적 주체로서의 스스로의 이미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단순히 사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바르부르크에 대해 자주 논평했던 아감벤 Giorgio Agamben,

1942– 은 그의 방법론을 “이름 없는 과학”으로 명명한다. 그는 바르부르크의 해석학적 연결고리가 도상학 Iconography 과 예술사 - 문화사, 그리고 “이름 없는 과학”이라는 세 개의 축을 따라 구성된다고 주장하며, 이 ‘과학’을 가장 가깝게 지칭하는

23 “Nachleben der Antike (the afterlife of the antique); Pathosformel(an emotionally charged visual trope); and Denkraum(a space for contemplation)” Colleen Becker, “Aby Warburg’s Pathosformel as methodological paradigm,” Journal of Art Historiography (9: Dec 2013) ‹https://arthistoriography.files.wordpress.com/2013/12/becker.pdf 마지막 방문 2015.11.05›

55#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도판 1 아비 바르부르크, ‹므네모시네 이미지 아틀라스› 패널 77, 1927.

도판 2 아비 바르부르크, ‹므네모시네 이미지 아틀라스› 패널 32, 1926.

오늘날의 용어는 ‘도상해석학 Iconology ’이라 주장한다.24 물론 중요한 것은 바르부르크의 방법론이 어떻게 명명되는지보다, 그가 이미지로부터 주제와 스타일을 연구하는 것을 넘어 다른 ‘해석’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그 기반에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어떤 틈에 주목했다는 것일 것이다. 바르부르크는 이미지의 지시적 대상을 넘어 언어로 특정할 수 없는 이미지 안의 정념들을 표출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아감벤은 그가 당시 일반적인 미술사 연구에서 이뤄지지 않던 이미지 내의 문화사회학적 요소들에 대해 주목한 것뿐 아니라, 그 접근 방식 자체가 끊임없이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내적 간극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바르부르크는 이미지가 기억이라는 형태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가

공통으로 겪어 온 깊은 감정(정념)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개별 이미지가 아니라 수많은 이미지가 함께 배열됨으로써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그가 이미지 아틀라스를 제작한 이유다. 그의 므네모시네 아틀라스 프로젝트는 바로 파토스정형의 구상이었다. 바르부르크는 르네상스를 비롯, 인간 역사의 중요한 자율적 전환의 순간 작동했던 이성들 뒤에, 떼어 놓을 수 없는 기억이 담긴 이미지들을 발견하였다. 므네시모네 아틀라스의 검은 패널이 이성을 의미한다면 그 이미지들의 모임은 그 어떤 논제나 이론보다 생생한 정념을 구현한다. 하나 하나의 개별 이미지들에 과거는 파편으로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나, 그들이 모인 복수의 이미지들은 과거의 강력한 파토스 pathos 를 표출시키고야 만다. 그렇게 므네모시네 아틀라스의 이미지들은 니체가 “기억의 물결”로 명명한 것처럼 “신체를 관통하여 자기 동일성을 해체하는 충동의 파동”을 구성하는 “정념의 몸짓”이 된다.25 주어진 맥락은 무의미해진다. 그

이미지들의 조합 속에서 우리는 “완전한 망각”을 통해 “어떤 근원적인 기억의 회상”이 가능함을 발견한다.26 이것이 바로 형상화되는 파토스다. 그 앞에서 관람자는

24 Giorgio Agamben, Potentialities: Collected Essays in Philosophy, edited and translated by Daniel Heller-Roaze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p. 90–99.25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379쪽.26 위의 책, 379쪽.

5756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스스로 무너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관조할 수 있는 거리, 즉 사유 공간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1929년 갑작스런 죽음으로 바르부르크의 이러한 프로젝트는 중단된다. 하지만 므네모시네 아틀라스 프로젝트는 애초에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미지들이 파토스의 근원을 향하는 방식은 무한 증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카이브가 그렇겠지만 인류 공통의 감정들의 기억을 담은 이미지들을 어떻게 모두 모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2. 아케이드 프로젝트그렇지 않았다면 주목받지 않았을, 전혀 보여지지 않았을 사소한 것들, 잊혀진 예들, 부수적인 것들로서의 이미지들을 성좌 constellation 의 형태로 펼쳐 놓았던 또 다른 인물은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다. 바로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1940 이다. 그의 필생의 역작이지만 결코 완성되지 못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 Arcades Project』는 벤야민이 13년에 걸쳐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단상, 때로는 중복되는 인용들, 완성되지 않은 자료 형태의 원고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패션, 건축, 박람회, 간판들, 매춘, 도박, 거리의 모습들과 꿈과 환각, 권태, 수집과 같은 대체 사유들을 엮어 내고 있는데, 조형준은 이를 근대의 원형으로서 19세기의 파리의 이미지들을 수집, 재배치함으로써 결국 동시대 자본주의의 기반을 해체, 조립하려는 시도로 해석한다.27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구성은 벤야민이 1940년대 초반 완성했던

문제의 글, 역사 철학 테제 의 입장을 예고하고 있다. 만보자 flâneur 로서 그의 시선은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증거들로 가득 찬 도시에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진정한 상”을 찾고 있는 듯하다.28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역사의 끝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진정한 과거를 알아야 하는데, 그 이미지는 역사의 일반론에

27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서울: 새물결, 2014), 한국어판 역사 서문 참조28 Walter Benjamin, Illuminations: Essays and Reflections, translated by Harry Zohn(New York: Schocken, 1968) p. 255.

입각해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는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지고, 잊혀지는 것들 안에서만 정확히 드러날 수 있는데, 어쩌면 그 진실이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존재 양식을 인식하는 순간 어떤 해체를 통해 이미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일 것이다. 달리 말해, 현재가 과거와 접촉하는 순간의 그 충격이 오늘날의 개별자들을 결정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벤야민이 진정한 역사의 재료가 된다고 보았던 과거는 역사의 연속성으로부터 돌출되어 현재를 직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그 순간 실재성 actuality 은 획득된다.29

바르부르크의 지도가 이미지와 도상의 것이었다면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텍스트를 포함할 뿐 아니라 그것을 다시 이미지화한 지도라 할 수 있다.30 그들은 이미지 속에 과거가 잔존하고 있음을 확신하였다. 바르부르크는 이미지들을 특정 주제에 따라 수집 배치하였지만, 그렇다고 그 이미지의 지도로부터 개념이나 관념을 도출해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이성적 시도들을 항상 넘어서는 파토스의 분출을 증명하고자 했다. 벤야민 역시 이미지로부터 과거를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했지만, 그 인식은 의도와 주어진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는 차가운 이성의 인식이 아니었다. 그는 충격, 흐트러진 감정, 밖에서는 한 없이 지루하지만 ‘가장 화려한 안감’을 지닌 나태와 꿈속에서, 말 그대로 ‘세속적인’ 깨달음만이 발견과 동시에 사라지는 과거를 포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31 그들에게 과거는 대서사가 아니며 어떤 성질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과거가 특정한 내용으로가 아니라 그 잔존 형식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존재해 왔지만 보여지지 않았기에 항상 재발견되는 것, 또한 어떤

29 위의 책, 262–63쪽.30 바르부르크와 벤야민의 프로젝트들 간의 형식적, 기능성 유사성에 주목한 연구는 이미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다나카 준의 이미지의 역사 분석, 혹은 역사의 이미지 분석: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네›에서 이미지의 형태학 (최경국 옮김, 『美術史論壇』, 2005)은 몽타주 기억에 근거 원형을 재생하는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 내는 반복으로 이미지 변용의 논리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강수미의 이미지공간: 발터 벤야민과 현대미술 는 미술의 영역에서 비연대기적 이미지 역사를, 김길웅의 논문( 이미지와 역사–바르부르크의 상징과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 개념을 중심으로 , 『뷔히너와 현대문학』, 2013) 은 역사와 문학의 차원에서 바르부르크의 상징 개념을 풀어내고 있다.31 벤야민의 나태, 세속적 깨달음의 개념 참조.

5958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내용으로 채워져 내러티브로 유입되는 순간 다시 놓치고 마는, 그러한 인식의 양태로서만 우리는 과거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과거의 현재성이다.

V. 결론을 대신하며…

1. 해시태그 Hashtag, #

이들 프로젝트에 비추어 오늘날 이미지의 조합을 통한 역사 서술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20세기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 그리고 이성의 — 단절을 트라우마로 가졌다. 바르부르크와 벤야민의 작업은 그러한 단절 이전에 이미 이성의 실패를 감지하고 그에 선-대응한 역사 연구라 할 수 있다. 반면 주류 영화의 역사는, 서사의 반영으로 인해 초기부터 연속성이라는 특징을 중심으로 현실의 재현에 공을 들여왔고 그것이 20세기 영화의 주요 흐름을 형성했음을 알려 준다. 그런데 오늘날 아카이브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작업들에 대한 평가가 주로 후자, 즉 주류 영화의 방법론의 맥락에서만 시도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각 아래 파운드 푸티지 작업은 공적 역사라는 대서사에 대한 대안 역사와 기억의 기록으로서의 역할로만 인식된다. 문제는 이러한 시각이 이미지들을 여전히 어떤 연속성에 귀속시킨다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아카이브 작업들을 이미 충분히 넓은 개념인 다큐멘터리(적 서사)에 포섭시켜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마치 60년대 프랑스의 누벨바그 혹은 그와 비슷하게 무리지어지는 뉴시네마들이 과거를 재구성하는 시도로서 다큐멘터리 양식에 관심을 보였던 것과 유사하다. 트라우마 담론이 트라우마의 극복과 기억의 회복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감으로써 또 다른 서사 형식을 발견하는 것에 몰두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재현될 수 없는 트라우마의 중핵을 다시 배반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카이브 몽타주를 새로운 역사 Hi/story 로만 접근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의 과거 호출일뿐 동시대의 역사 인식에 별 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몽타주로 인해 새로이 탄생한 인식이 그것의 기획자, 천재 감독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이 관객에게 어떠한 인식이며 관념이 될 수 있을 것인가?조르주 디디-위베르만 George Didi-Hupperman, 1953– 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인 인류의 이미지들이 그 무엇보다도 인민 demos 을 재현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32 벤야민은 20세기 기술 복제 시대의 이미지들에 양가적 감정을 표출한 바 있다.33 공적인 영역이 확장되고 대중이 더욱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음을 반기면서도 결국은 “챔피언, 스타, 독재자가 승리자가 되는” 정치에 새로운 미학이 굴복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디디-위베르만은 벤야민이 역사성을 경험하는 순간을 반쯤 각성된 상태에서 “마치 눈을 비비듯이” 깨어나는 순간의 인식으로 묘사한 것처럼, 시각적인 것은 항상 변증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잠을 자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깨어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우리는 의식의 지배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감각의 왜곡을 넘어 역사를 인식할 수 있다. 의식의 영역에서 직접적인 의미만을 전달하는 이미지들은 인민들의 온전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없다. 변증법화 된 시각은 이미지에 우리의 감각을 머물게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지시적 의미와 태동하는 감정들을 함께 경험하게 하여 그 관계를 직접 깨닫게 한다. 이는 결국 감각적인 것들 사이에서 인민을 재발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른 이미지들, 다른 몽타주들을 제작하고, 그것들을 다르게 바라보고, 연계된 분할들과 움직임을, 결합된 감정과 생각을 거기에 도입해야 한다. 결국 눈을 문질러야 한다. 즉, 재현을 정서와, 이상적인 것을 억압된 것과, 숭고화된 것을 증후적인 것과 문질러야 한다. 34

사실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은 우리를 바르부르크나 벤야민이 시도했던 이미지 성좌로 다시 초대한다. 21세기 새롭게

32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서용순 외 옮김, 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 , 『인민이란 무엇인가』(서울: 현실문화, 2014)33 Walter Benjamin, Illuminations: Essays and Reflections, translated by Harry Zohn (New York: Schocken, 1968) p. 218.34 디디-위베르만, 위의 책, 109쪽.

60남수영

가능하게 된 뉴미디어 기술들은 그러한 기록, 보존, 전시의 욕망을 대중적 현상으로 만들었다. 터치 한번으로 이미지와 동영상이 저장될 뿐 아니라, 클릭 한번으로 전 세계의 이미지 아카이브에 접촉이 가능하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특히 해시태그(#)와 같은 검색 및 전시 기능의 조합을 통해, 이미지들은 즉각적이고 동시적으로 배열된다. 거대 내러티브가 사라지고 대신 파편화된 정보들이 이어지듯, 이미지는 개별적으로 주목받기보다 군락을 이루어 접근된다. 이들 이미지가 시간적 차이를 무화하며 호출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오늘날 산재하는 아카이브들은 20세기의 ‘기록/기억’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지만, 거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연결짓는 ‘맥락’이 아니다. 누군가의 서사에서조차 이미지들은 새롭게 (재)발견될 수 있다. 검색어의 경우의 수는 무한대가 될 수 있듯이, 발견의 주체는 분산된다. 그리고 그때조차 우리는 이름 없는 다른 자들의 탐구 내용을 자동완성 기능으로 엿볼 수 있다. 또한 검색된 이미지들은 검색어 그 자체보다, 검색자, 연구자, 수집가에 대해 더 많이 알려 준다. 이것이 오늘날 아카이브의 생산과 소비와 유통에 개입한 수많은 이름 없는 자들, 즉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구성원이 현상하는 방식인 것이다. 여기서 부각되는 것은 새로운 서사가 아니라 연대이며, 편집으로 탈각되지 않는 존재 그 자체다. 바르부르크가 마주했던 절대 죽일 수 없는 유령과도 같은 정념이나, 벤야민이 물적 역사에서 발견한 섬광과도 같은 역사 인식도 이와 같이 나타난다.

«필름 몽타주»의 기획안은 전시된 아카이브 몽타주들이, “거대 서사가 놓쳐 버린 또 다른 이야기, 즉 대안적인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지만,35 실제로 관객이 발견하는 것은 어떤 서사가 아니라 실제 역사로서의 인민, 행위, 꿈과 노동 이미지들이다. 파로키는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로 노동을 비추지 않는 카메라를 비판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노동을 비추는

35 코리아나 미술관 홈페이지, 스페이스씨 지난 전시 소개 ‹Film Montage› ‹http://www.spacec.co.kr/mboard/mboard.asp?board_id=gallery02&group_name=spacec&idx_num=71&page=1&category=writer subject content&search=&b_cat=0&order_c=b_reg_date&order_da=desc 마지막 방문 2015.11.05›

도판 3 SNS 인스타그램 태그 검색 이미지

도판 4 구글 이미지 검색 화면(예)

6362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 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몇 가지 단상

남수영

싱글쇼트›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이미지를 통한 ‘연대’가 제시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젠 리우의 ‹�e Shape of �ings to Come›은 기호, 사물에 혼합된 인간의 몸과 움직임을 통해, 쇼반 데이비스와 데이비드 힌튼 Siobahn

Davies & David Hinton 은 ‹All �is Can Happen›에서 그 자체로 움직임인 영화 푸티지들을 통해, 사건과 서사가 아닌, 몽타주를 구현했던 것이다. 이미지들은 마치 깨어나는 순간처럼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며, 시간 위에 개념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영화-몽타주와는 차별되는 영상을 이루어 낸다. 울루 브라운 Ulu Braun, 1976–의 ‹파크Park›는 합성을 통한 이미지 상호작용을 시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간적 몽타주를 뉴미디어적으로 경험하게 하였다. 이외에도 전시에 참여한 작품들은 #아카이브라는 키워드로 합쳐진 거대한

#몽타주처럼 서로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으면서, 개별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 새로운 감각을 마련해 주었다. 각각의 작품들을 분석, 해석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시도하는 대신 그러한 가능성 역시 오늘날 새롭게 기능하는 몽타주의 효과임을 설명하며 이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2. 다시 #몽타주 뉴미디어에 기반한 스마트 기술은 맥락을 떠나 파편화된 형식으로 수집, 배열, 전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방식의 아카이브를 만들어 냈고, 그 자체로 일종의 몽타주다. 그러나 그 몽타주는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구성되어서가 아니라, 각각의 태그 hashtag 를 통해 그 구성을 벗어날 수 있는 잠재성으로 역사를 가리킨다. «필름 몽타주»전의 경우는 개별 작품들이 전시가 내포하는 하이퍼텍스트 hypertext 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아카이브의 형태를 대변할 수 있다. 그 안의 이미지들은 각기 또 다른 텍스트를 불러 올 것이지만, 그것은 다른 것들을 지우고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영상 작업들에서 아카이브 푸티지 몽타주가 어떤 기억, 즉 대안적 역사를 표방한다면, 나는 그것이 감독 한 사람의 의도에 따라 구성된 것이 아닌 경우에만 한정할 것이다.

바르부르크와 벤야민의 작업이 말해 주듯, 아카이브 이미지의 몽타주는 비주류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비의도적 동시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기억이 된다. 그들에게 이미지들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와 현재의 폐허를 배회하는 천사는 우울하다. 그 어깨 너머에는 항상 그들에게 발견되고자 하는 과거가 아른거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암울한 현재와 겹쳐졌기 때문이리라. 오늘날 출처 확인 없이도 헤쳐모이는 이미지들은 일견 밝고 과시적인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항상 걸러지지 않는 흔들림과 초점 없음, 예기치 않음과 놀람, 주저와 나약함이 있다. 이렇게 반짝이며 존재하는 인민의 모습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 historie/story 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 아닐까?

1 강수미, 이미지공간: 발터 벤야민과 현대미술 , ‹2013 벤야민 커넥션–쓰여지지 않은 것을 읽다 : 발터 벤야민의 현재성›, 도서출판 길 주최 학술대회, 2013.

2 김길웅, 이미지와 역사–바르부르크의 상징과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 개념을 중심으로 , 『뷔히너와 현대문학』 Vol. 41, 2013.

3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김정복 옮김, 서울: 휴먼아트, 2013.

4 이미지의 역사 분석, 혹은 역사의 이미지 분석: 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네›에서 이미지의 형태학 , 최경국 옮김, 『美術史論壇(Art history forum)』, Vol. 20, 2005.

5 밀란 쿤데라, 『불멸』 김병욱 옮김, 서울: 민음사, 2011.

6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조형준 옮김, 서울: 새물결, 2014.

7 앙드레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 박상규 옮김, 서울: 사문난적, 2013.

8 제프리 노웰 스미스 엮음,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이순호 외 옮김, 서울: 열린책들, 2005.

9 조르조 아감벤, 『행간』, 윤병언 옮김, 서울: 자음과 모음, 2015.

10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 , 『인민이란 무엇인가』, 서용순 외 옮김, 서울: 현실문화, 2014.

11 조혜영, 『영화의 죽음:포스트필름 영화의 존재양식에 대한 연구』, 학위논문, 서울: 중앙대학교, 2013

12 Colleen Becker, “Aby Warburg’s Pathosformel as methodological paradigm,” Journal of Art Historiography

(9: Dec 2013) ‹https://arthistoriography.files.wordpress.com/2013/12/becker.pdf 마지막 방문2015.11.05.›

13 ‹Film Montage›‹http://www.spacec.co.kr/mboard/mboard.asp?board_id=gallery02&group_name=spacec&idx_num=71&page=1&category=writer subject content&search=&b_cat=0&order _c=b_reg_date&order_da=desc 마지막 방문 2015.11.05.›

14 Giorgio Agamben, Potentialities: Collected Essays in Philosophy, edited and translated by Daniel Heller-Roaze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15 Jacques Derrida,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translated by Eric Prenowitz,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16 Jaimie Baron, The Archive Effect: Found Footage and the Audiovisual Experience of History, New York: Routledge, 2014.

17 Lev Kuleshov, Kuleshov on Film, 1922–1968. Selected, translated and edited with an introduction by Ronald Levaco,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4.

18 Walter Benjamin, Illuminations: Essays and Reflections, translated by Harry Zohn, New York: Schocken, 1968.

오늘날 영상 작업들에서 아카이브 푸티지의 사용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만큼, 기록이 지시하는 역사와 그에 대한 기억의 문제는 복잡해졌다. 전통적으로 아카이브는 과거에 대한 기록으로서 공적 역사가 기반하는 배경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오늘날 작가들은 소위 창조적인 몽타주를 통하여, 아카이브 이미지가 비판적 역사의 재료일 뿐 아니라 반-역사, 즉 대안적 기억을 호출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본 논문은 연상 작용을 통해 의미를 구성해 내면서도 그 자체로 새로운 맥락에 접합될 수 있는 이미지의 양면성에 주목, 오늘날 기억의 저장고로서 이미지 아카이빙이 지니는 미학적 가능성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아카이빙 이미지는 분명히 존재해 왔음에도 기존 체제에는 묻혀있던 것들로, ‘역사(History)’에 대한 물적 증거라기보다 ‘역사’를 전복하는 기억(Memory)이다. 그렇다면 의도된 몽타주에 의해 새로운 맥락 안에 매끄럽게 전유되는 이미지는 여전히 전복적일까? 대문자 역사 안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개별 이미지들에 주목했던 두 가지 프로젝트―즉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네 아틀라스 프로젝트―는 통일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연속되는 오늘날 영상작업들에 흥미로운 통찰력을 제시한다.

‘아카이브 욕망’이라는 표현처럼, 이미지는 객관적 기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축적되지만 사실 아카이브는 그 기록 이전에 ‘기억’의 욕망을 증명하기에, 파운드 푸티지 몽타주는 이미지가 사적으로 전유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 글은 아카이브 이미지가 제공하는 기억은 주관화될 수 없기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무명의 기록들이 과거 이미지가 매개하는 과거는 수많은 무명의 기록들로부터 되살아나는 것, 그것이 아카이브의 특성이며, 아카이브 이미지로부터 이성적 의미화를 넘어서는 역사 인식이 가능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초록

#아카이빙 #몽타주 #동시대성:역사 인식 방법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남수영

The more archival footage in contem-porary film works, the bigger question it becomes how to deal with the history and memories which the footage directs and collects. Traditionally, archives mean documentation of the past, on which the would-be History stands as it is. These days, artists tend to use them as mate-rials for creative montage, highlighting the fact that archive images summons counter-memory lending itself to critical history. This essay concentrates on the ambivalence of images―i.e. clarity and ambiguity― articulating how images can clearly demonstrate meanings through as-sociation, but also inosculate completely opposite things together into new con-texts at the same time. This is in order to contemplates on the question where the essence of potentiality of image archiving as an aesthetic regime lies. Archival image presents memories of things that existed but never recognized. Therefore, they subvert History rather than support it as material evidences. This is how this paper comes to focus on two unfinished proj-ects, which recognized and recollected individual images unclaimed in history, i.e. Aby Warburg’s Bilderatlas Mnemosyne and Walter Benjamin’s Passagenwerks. Images in these projects never construct continuous narratives but constellate forgotten pathos to draw its breaths in the contemporary.

As intimated by “archival fever,” images accumulated in the pursuit of objective or-igins, proves the desire of memory among other things. Found-footage appropriated in personal montage attests to this well, not by its denoted meanings but by the presentation as a whole. Along the line, this essay underscores that the memories provided by montage of archival footage cannot belong either to the director, or to the author as an individual. Unnamed doc-

Abstract#Archiving, #Montage #Contemporary:

Some Thoughts on Historical ConsciousnessNam, Soo-Young

아카이브 몽타주가 일종의 대안 서사로 인식되는 것은 의미 중심 체제로 환원하는 것과 같다. 마치 해시태그로 대변되는 뉴미디어 네트워크가 의미 중심의 시스템이 분리시켜 버린 사건과 발견들을 분산된 형태로 재연결하는 것처럼, 오늘날 몽타주된 이미지들은 감독의 의도에 따라 구성된다기보다 즉각적으로 전시, 연결되며, 역사성 그 자체 뿐 아니라 역사 중심에 있는 인민을 가시화한다. 그렇게 동시대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공공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 오늘날 영상 작업의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uments mediate the past not as specific contents but as the pastness itself which flits by in present moments. Archives reanimate the moments in a disseminate way. This parallels the way we get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free from a fixed frame of idea and reason. This is why interpreting archive montage as alterna-tive narrative can be considered reductive. The possibility of boundless awareness of history should not be redirected to certain meaning-centered construction of stories, whether alternative or not. In a new-me-dia era, networking enabled by hashtags or ‘autocomplete’ revives the unfulfilled projects which come close to so-called new historical consciousness, in which no individual is buried in a grand narrative of a History. Only in that sense, montage images of today not only present the his-toricity itself but also visualize demos as dispersed. This is how the contemporary film works contribute to building collective history today.